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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enta(마젠타)01

Blackbinder0309 2018. 9. 30. 22:14
빠르게 흘러가는 것들은 그냥 그렇게 다 흘러간다.
그저 남는 것들을 쥐고 살아갈 뿐이다.

내겐 그 뿐이라면, 형은 내 남은 전부였다.



Magenta-01

                                   Written by. Blackbinder0309




"아, 또 고장났어"

정국은 애꿎은 냉장고 문을 발로 차며 말했다. 바닥의 물기가 찝찝해 털어내던 찰나였다.
며칠이나 버틸까 벼르고 있던 냉장고가 제 역할을 못하고 얼어있던 것들이 녹아내린 탓이다.
작년에 겨우 학자금대출을 다 갚고 이제 안정기가 오나 싶더니 또 큰 돈을 들이게 생겼다


일단 뭐 어쩌겠어.
상했을 것들을 큰 봉투에 다 옮겨담고 알바가던 길에 버리려는 생각이었다.

근데 당장 먹을 것도 없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털면서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새벽 1시였다.
늘 먹던 진라면 매운맛 큰 컵과 삼각김밥, 핫바를 두어개 집어서 계산대로 갔다. 뭐, 맨날 먹는 거라서 고민은 안한 것 같다.

"6,700원 입니다"

이럴거면 그냥 짜장면이나 시켜먹을 걸 그랬다. 웬만한 식비보다 비싸게 나와서 짜증이 났다.

신경질적으로 편의점에서 나온 정국은 생각보다 막막했다. 아, 어디서부터 얼마나 모아야 하지?
영양소라곤 찾아보기 힘든 것들을 입에 우겨넣고 빠르게 으로 향했다.

정국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취업 전까지 줄곧 미술학원에서 보조강사로 일해왔다.
과거형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지금또한 취업 전이라 보조강사로 알바 중이다.

한창 수시철이라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아이들 그림을 봐주다 보면 자신의 입시시절과 대학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너무 힘들었던 그 시절들. 까마득했던 자신의 청춘을 바쳐 겨우 졸업했던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난 도대체 뭘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왔을까
대학의 로망을 그리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이들의 눈을 봤다.

나도 그 로망을 그렸던 사람이었는데
현실은 삼각김밥과 컵라면. 그 뿐이었으니 입이 바싹 말라오는 기분이었다.

오후 1시 30분부터 10시는 미술학원 알바시간.
끝나고 대충 끼니를 때우러 들린 곳은 또다시 편의점이었다.
아마 당분간은 냉장고비용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같았다.

새벽에 가격으로 뒷통수를 맞은 이후, 가격부터 다시 따지며 조심스럽게 집기 시작했다.
이건 950원...또 이건 1700원... 편의점에서 4000원을 넘긴다면 그 역시 의미없다고 단정지었다.

계산대에 마주선 알바생역시 피곤에 찌든 표정이었다.
당신도 참 인생 피곤하구나. 나돈데.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뜻보니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이시간에 원래 이사람인가?

"4700원입니다"
아. 4000원 또 넘었네 뭘 빼야되지
"그럼 갈아만든 배 빼주세요"

"그냥 드세요. 이건 제가 계산할게요."
...?
"네? 아니 그러실 필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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